외국 엔지니어 보며 느낀 ‘격차’
업무 강도에 비해 보수가 적은 한국 토목설계 현실
”어떻게 하면 반복적인 업무를 덜할 수 있을까?” 고민
토목 설계사이자 유튜브 채널 “길튜브”를 운영하는 최길호 님이 지난 11월 “토목구조설계 Young Engineer가 코딩할 줄 알아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올린 영상입니다.
길튜브님은 컨설팅 회사의 교량 설계 엔지니어로 2019년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일상 브이로그, 토목 설계 엔지니어의 생각, 여행 기록 등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의 채널에는 총 5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다녀갔습니다.
외국 엔지니어를 만난 이야기로 영상을 시작합니다. 길튜브님은 어떤 “격차”를 느꼈다고 해요. 과학고 - 서울대 학사 및 석사를 졸업해 국내에서 교량 엔지니어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부족한 점을 느낀 거죠. 경쟁력 있게 나아가는 외국 엔지니어들을 보며 한국 토목 설계 현실에 대해서도 더 객관적으로 돌아보신 것 같아요.
토목 전공자들 설계사 기피
단순 반복 작업 위주
발주처의 잦은 설계 변경
토목 설계사는 업무 강도가 높기로 유명합니다. 마감 기한이 촉박한데 업무량이 많죠.
엔지니어가 구조 해석도 해야 하고, 계산서 작성, 도면 그리기, 수량 산출도 해야 합니다. 3D 모델링이 필요한 프로젝트의 경우 BIM 모델러를 따로 두기도 하지만 구조 해석에 대한 커뮤니케이션과 수정 작업이 계속 필요하죠.
기본 업무를 처리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설계의 작은 부분이 하나 수정될 때마다 전체 프로세스를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현장의 변수뿐 아니라 발주처가 설계 변경을 하는 경우가 잦죠. 설계사는 이에 따라야만 하구요.
그러다 보니 설계사는 반복 작업에 무수히 많은 시간을 쏟게 됩니다. 정작 더 나은 설계안을 고민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채로 말이죠. 길튜브님도 토목 업계를 겪으시며 비슷한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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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토목 전공생들이 설계사를 좀 기피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업무 강도에 비해 보수가 좋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설계사는 구조계산서를 부록으로 다 Back data를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그런 ‘단순 반복 작업’이 굉장히 많아요. 또, 거의 다 했는데 발주처에서 설계조건을 바꾸거나 시공사에서 dimension이 바뀌거나 이러면 다시 다 해야되니까 그런 면에서 업무 강도가 높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유튜브 영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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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어떤 해결 방법이 있을까요?
길튜브님은 반복 작업을 덜기 위해 컴퓨터에 일을 더 시키는 방안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직접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했다고 해요.
그 결과 최근 구조계산서 부록 만드는 작업을 하는데 두 명이 온종일 해야 했을 일을 혼자서 2시간 만에 끝냈다고 합니다. 지금도 업무 외 시간을 활용해 틈틈이 코딩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해요.
VBA를 활용한 프로그래밍
하지만 코딩 공부를 하는 데에 시간과 비용이 듭니다.
현재 주어진 업무만으로도 벅찬 설계사에게 물리적으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을 수 있지요. 또 개발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설계하기 위해 개발 업무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사실상 설계사는 개발자가 아닌데 말이에요.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우리의 목표는 개발 능력을 기르기 이전에 반복 작업을 줄여 업무 효율을 높이고, 설계사가 정말 중요한 일에 에너지를 쏟는 것입니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지요. 코딩을 배우지 않고도 업무 효율을 개선하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코딩을 배우지 않고도 컴퓨터에 일을 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API를 이용한 것인데요. 컴퓨터가 쓰는 언어를 알지 못하더라도 그 결괏값을 얻어서 업무에 활용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API를 통한 자동화로 설계사의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발주처의 설계 변경에 대응하기 위해 데이터를 통합해서 뒷부분 작업보다는 앞단에 더 신경을 쓴다고 해요. 설계안을 검토하고, 설계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또 선진 기업의 경우 DB 체계를 갖춰 놓고 API를 통해 교량 타입별로 부재 결과와 물량 산출이 빨리, 정확하게 나올 수 있는 프로세스를 정의해놓고 있다고 합니다. 설계사가 클릭 한 번으로 필요한 계산서, 도면, 수량 산출서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설계가 여러 번 변경되어도 전처럼 모든 과정을 다시 할 필요 없이, 필요한 자료와 산출물을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는 거지요.
‘좋은 건 알겠어요. 그런데 자동화를 꼭 해야할까요?’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거에요. 지금까지 늘 이렇게 해왔는데 갑자기 바꾼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죠.
M-Suite API 자동화 활용 예시
하지만 이 변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요. 세상이 정말 빠르게 달라지고 있거든요.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사티아 나델라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2년간에 가치에 해당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2개월 사이에 봤다.”고 했어요. 정부에서는 'DNA+US(Data, Network, AI, Untact and Digital SOC)를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핵심으로 발표했죠. (👉 관련기사 더 읽어보기)
직장인의 삶에도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우리는 변화하는 세상에 발을 맞춰야 해요.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면서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거란 얘기가 많죠. 2017년에 한국고용정보원이 조사한 결과 "2025년 로봇, 인공지능이 근로자 업무의 70%를 대체"할 거란 전망도 나왔어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쉽게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고 해요. 데이비드 오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I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이 저임금 일자리로 밀려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지만 "로봇이 대체하는 일자리 늘어나도 인간의 핵심 가치는 분석력과 소통"이라고 말했죠.
오히려 판단력, 창의성, 문제 해결 능력, 분석력, 의사소통 등을 발휘하는 쪽으로 역량을 기른다면 나의 일의 가치를 올릴 수 있어요. 건축 시스템 엔지니어링 및 프로젝트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국적 기업 Arup Group Limited를 설립한 오베 아룹(Ove Arup)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같을 거예요.
엔지니어로서 더 나은 삶을 누리는 것.
엔지니어가 반복 작업을 덜 하게 되면 무엇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설계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남이 시키는 일, 반복 작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가치 판단을 하는 사람으로요. 대안 리뷰로써 설계하니 더 나은 설계안에 대해 검토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요.
이런 환경이 갖춰진다면 발주처와의 관계도 새롭게 정의할 때가 오지 않을까요? 단순히 변경을 요구받기보다는 더 나은 대안을 함께 고민하는 관계로 말이에요.
💡 엔지니어가 설계에 더 집중하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되면 엔지니어의 가치가 더 올라가지 않을까요? (👉희소성 문제 해결의 열쇠, 생산성 향상 | click 경제교육 | KDI 경제정보센터) 단순 업무를 컴퓨터에게 맡기고 엔지니어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역량을 높인다면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을 키우고, 엔지니어에 대한 사회적 대우도 높아지기를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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